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라곤의 카탈리나 (문단 편집) === 헨리 8세의 결혼과 사랑 === 다행히도 헨리 7세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, 왕위에 오른 10대의 [[헨리 8세]]는 [[프랑스]]나 다른 나라 왕녀들과도 혼담이 오갔지만 형수인 캐서린에게 청혼했다. [[형사취수|형수와 결혼하는 것은]] [[근친상간]]으로도 여겨질 수 있었지만, 캐서린 자신이 아서와 합방하지 않은 처녀이므로 헨리의 형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절차를 거치자[* 당시 관습상 부부가 첫날밤을 보내지 않으면 결혼은 무효였다.] [[교황청]]에서는 둘의 결혼을 허가했다. 그래서 1509년에 캐서린은 23세의 나이로 18세의 헨리 8세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려 [[잉글랜드]]의 왕비가 되었다. 많은 창작물에서 아라곤의 캐서린은 보통 검은 머리에 매력이 없는 중년의 라틴계 [[스페인]] 여성으로 나온다. 하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라틴계 여성과는 거리가 먼 외모였으며, 더구나 '''상당한 미인이기까지 했다'''. 키는 매우 작았으나[* 키가 작은 것에 대해서, 10대 중후반 동안 시아버지 [[헨리 7세]]에게 냉대받아 경제적으로 힘들게 지낸 탓이라는 이야기가 있다. 그러니까 헨리 7세 때문에 경제난에 시달리느라 발육부진이 왔다는 것이다. 실제로 당시 캐서린은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. 훗날 캐서린이 [[헨리 8세]]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여러 번 가졌지만 대부분 유산/사산한 것 또한, 이 시기의 어려운 생활의 후유증이라는 의견이 있다. 결국 [[튜더 왕가]]의 대가 끊긴 것은 결과적으로 헨리 7세의 잘못이 되는 셈이다. --자업자득--][* 다만 캐서린이 시집왔을 때는 만 15세경이니 대개 키는 다 큰 나이이고 키는 딸 [[메리 1세]]도 작았던 걸 보면 단순 유전일 수도 있다. [[엘리자베스 1세]]도 메리 1세만큼 힘든 성장환경이었으나 170cm의 장신이었다. 참고로 키는 대부분 모계 유전자가 좌우한다.] 고전적인 게르만계 미인의 조건인 새하얀 피부와 치렁치렁한 붉은 끼가 도는 [[금발]]과 [[벽안|푸른 눈동자]]를 모두 갖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고 한다.[* 사실 족보를 따지면 어머니 카스티야의 이사벨이 게르만계 [[서고트]]족에서 비롯한 게르만계 출신이고, 아버지 페르난도도 어머니와 [[근친혼|친가(트라스타마라 가문)로 6촌이라]] 혈통면에서 대동소이하므로 이렇게 될 확률이 높다. 족보만 따지게 된다면 서고트 게르만계에 바스크와 라틴 혼혈이 살짝 가미되었다고 볼 수 있다.] 더구나 캐서린은 강대국의 왕녀라는 고귀한 신분이었기에, 낭만적이며 기사도를 좋아했던 젊은 시절의 헨리 8세는 '''7년이나 시련을 겪은 가엾은 공주'''를 자신이 구출한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꼈다. ~~게다가 자신은 왕의 신분이니 이 얼마나 멋진 스토리인가~~ 훗날 헨리 8세가 그 유명한 [[앤 불린]]과 결혼하기 위해 캐서린을 냉정히 내치는 방식으로 이혼을 강행한 것 때문에,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은 애정이 없는 철저한 [[정략결혼]]이었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. 그러나 헨리 8세는 캐서린과 결혼을 하던 당시만 해도 캐서린을 진심으로 사랑한 것으로 보인다. 그는 20대 무렵 쓴 시에서 >"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캐서린을 골라 결혼할 것이다." 라고 자랑하기도 했다.[* 특히나 《[[먼나라 이웃나라]]》에서는 [[헨리 8세]]가 '내가 왜 늙고 못생긴 [[형수]]와 결혼해야 하냐.'고 반발을 하는 것으로 묘사해 놓았다. '''물론 당시 캐서린은 '늙고 못생긴 형수'가 아니라 20대의 한창 나이였다.''' 그것도 고작 23세로 요즘으로 치면 아직 대학생의 나이이다. '''이 책에 있는 숱한 고증오류 중 하나이다'''.] 캐서린은 독실한 [[가톨릭]] 신자로 순종적이고 얌전한 성격이었으나, 한편으로는 7년에 걸친 시아버지 헨리 7세의 핍박과 가난을 견딘 경험 덕분에 인내심도 대단했으며,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에스파냐의 왕녀 지위보다는 어렵게 획득한 잉글랜드의 왕비 지위에 더 높은 자긍심을 가졌다고 한다. 결혼 초기에는 부부 금슬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기에, 헨리 8세와의 사이에서 여러 차례 아이를 가졌다. 기록에 따르면 6번이나 [[임신]]을 하여 총 3남 3녀를 낳았다고 한다. 하지만 공교롭게도 모두 사산하거나 태어난 지 얼마 못 되어 숨졌다.[* 이 잦은 유산과 태아의 사망이 실질적으로는 [[헨리 7세]] 탓이라는 주장도 있다. 헨리 7세가 캐서린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냉대하면서, 캐서린이 신체적으로 한창 자랄 나이인 10대 중후반에 무려 7년 동안이나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으니 신체 발육이 제대로 안 되었을 거란 추측을 할 수 있다.][* 각종 창작물에서 이 상황이 더 극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. <[[튜더스]]> 시즌 1에서 [[시녀]]에게 '아들을 낳았지만 태어난 지 엿새 만에 내 품에서 죽었다. 아주 귀여운 아이였다. 그리고 그 후로 전하께서 내게 발걸음을 안 하신다.'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 바 있다. 그러나 이후 [[헨리 8세]]는 이 시녀에게 눈독을 들이다가 검열삭제를 벌인다. 이와 비슷하게 영화 <[[천일의 스캔들]]>에서는 캐서린이 아들을 사산한 후 곁에 있던 아직 어린 딸 [[메리 1세]]에게 '왕위를 이어갈 네 남동생을 낳지 못했다.'고 울며 한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, 이로부터 얼마 뒤에 헨리 8세는 [[앤 불린]]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한다. 이렇듯 실제로 캐서린이 낳은 아들이 생후 며칠 만에 숨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, 훗날 헨리 8세는 [[제인 시모어]]가 낳은 [[에드워드 6세]]의 건강에 엄청난 신경을 썼다고 한다. 하지만 헨리 8세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6세 또한 왕이 되긴 했지만 몇 년 안 가서 죽었다.] 물론 그 시대의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. 그 높은 사망률을 딛고 살아남은 자식이 딸인 [[메리 1세]] 뿐이었다. 그래서 헨리 8세는 [[앤 불린]]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유일한 적자녀인 메리 1세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